안녕하세요, Memory 입니다~!

요즘 성우 수업을 듣는다고 서울을 왔다 갔다 하다보니 몸이 영 좋지 못해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줄었네요. 더불어 제가 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유와 타겟에 대하여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냥 제 일상 블로그면 제가 배우와 같은 유명인이거나 제 일상이 읽을 만한 매력이 있어야하는데 그건 또 아닌 거 같거든요. 일단 일상 블로그로 쓰고 있긴 한데 여전히 방향은 오리무중입니다. 이렇게 해메면서 발견해나갈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유의미한 시간이겠지요. 무튼, 방향을 정했든 정하지 않았든 중요한 건 꾸준히 쓴다는 것이 중요할 듯싶습니다. 


최근들어 읽은 책은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과 '미움받을 용기1,2' 이 세권인데요, 아직 미움받을 용기 2는 다 읽진 못했습니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은 조금있다가 리뷰하기로 하고 오늘 살펴볼 책은 '미움받을 용기 1'입니다.



미움받을 용기, 있으시나요? 인간관계에서 거절당하고 상처받지 않을 자신, 있으신가요?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용기'가 없기에 이 책이 오랫동안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왜 우린 '미움받을 용기'가 없을까요?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자랄 때까지 타인과 비교 당합니다. 초,중,고등학교의 상대평가, 대학을 들어가기 위한 수능, 회사에 입사하기 위한 시험. 나르 제외한 사람들을 패자로 만들고 나만은 성공해야 얻을 수 있는 인생 관문들이죠.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타인을 적으로 여기게 되기에 안정을 이루지 못하며 늘 초조해합니다. 조금만이라도 고삐를 늦추면 뒤쳐져버려 나락에 떨어질 것만 같거든요.


"행복해지고 싶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는 행복하고 싶단 욕구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맛난 걸 먹고 다른 사람보다도 더 자주 여행을 가며 다른 이들보다도 더 많은 것을 가져야 얻을 수 있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 아픈 사회를 살고 있는 개인에게 아들러를 대변하는 '철학자'(미움받을 용기의 화자)는 조금은 무자비하게 아들러의 철학이라는 극약처방을 놓아줍니다.


미움받을 용기의 화자는 아들러를 대변하는 '철학자'와 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있는 '청년' 이 두 사람의 대화로 이루어집니다. 전 이 책에서 "한국에서 어떻게 하면 개인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을 찾고자 했는데요, 철학자는 이 물음에 대하여 이렇게 답변합니다. 


자기 자신을 받아들여,

그러면 타인을 믿을 수 있고 친구가 될 수 있는 거지.

너는 그 친구를 도울 수 있고

넌 네 자신이 그 친구에게 도움이 된다고 실감하게 되어

더욱 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지.

그게 행복인거야.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번째는 자신의 가치를 존재의 가치에서 보는 것이며, 두번째는 '현재의 나'에 대한 온전한 책임을 진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존재의 가치'에서 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아들러에 따르면 가치는 '행위의 가치'와 '존재의 가치'로 나뉩니다. 행위의 가치는 '~이기 때문에'라는 이유가 있습니다. 즉 '회사에서 능력있기 때문에', 혹은 '반에서 1등하기 때문에'란 행위에 따른 타당성이 있는 가치입니다. 그러나 '존재의 가치'는 다릅니다. 나는 존재하는 것 자체로 가치있다고 그렇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번째, 현재의 나에 대한 온전한 책임을 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철학자는 변화를 혹은 그대로 있기를 선택하는 건 다름아닌 '현재의 나'라고 말합니다. 철학자는 과거와 원인을 완전히 부정합니다.  '과거에 부모님이 이혼했기에, 학대당했기에, 따돌림을 받았기에 나는 이럴 수 밖에 없어' 라는 건 핑계(인생의 거짓말)입니다. 그런 핑계로 자신은 끊임없이 '변하지 않겠어'라고 다짐하고 있는 거라고. 변하지 않기를 선택하는 건 현재의 자신이며 변할 용기가 없기에, 불편해도 그렇게 살고 있는 거라고 철학자는 말합니다. 


그렇기에 '이러이러한 과거때문에 나는 이럴 수 밖에 없어'라고 말하는 청년은 철학자에게 분노합니다. 자신의 아픈 과거를 부정당하고 변화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온전한 책임을 청년에게 물었으니까요. 어쩌면 그건 꾸짖음같이 들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철학자는 담담하게 청년이 변하지 못하는 것은 '현재의 나'의 선택의 결과일 뿐이며 그 선택에 대하여 책임지는 것 또한 온전히 청년의 몫이라고 합니다.


즉,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 현재의 나에 대한 온전한 책임을 진다는 것은 과거를 핑계삼지말고 현재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변화를 선택할 용기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아까전 우리 사회가 비교가 만연한 사회라고 했던 것 기억하시나요? 상대평가에는 늘 '평가자'가 우위에 있습니다. 선생님이 될 수도 있겠고 시험을 주관하는 기관 혹은 면접관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들러는 이것을 '수직관계'라고 하죠. 수직관계에서 사람들은 그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들러는 '인정 욕구'자체를 부정합니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줄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 밖에 없다고 말이지요.


행복해지기 위한 첫 걸음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바라지 않고, 자신의 존재 자체가 가치 있다고 믿으며 더 나은 '나'를 위해 현재의 선택을 하는 것. 그것이 아들러가 말하고 있는 자기 수용입니다. 


미움받을 용기는 여러가지 아들러 이론을 두 사람의 대화로 쉽게 풀어논 책인데요, 사실 저는 좀 많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책 리뷰를 쓰면서 제 생각을 좀 정리해보고 있는데 잘 되진 않습니다. 오늘 글도 버벅거리거나 주제가 훅 벗어나거나 논리에서 매끄럽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들진 않아요. 나중에 수정하거나 개념을 좀 더 쉽게 풀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미움받을 용기'에 대해선 앞으로 더 포스팅 할 예정입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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